原千晶さん講演会

自分らしくきるために2のがんを経験してづいたこと〜」

하라 치아키 강연회

자기답게 살기 위해 ~2번의 암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

게재 : 2018년 7월 17일

提供:NPO法人ウィッグリング・ジャパン

제공 : 비영리법인 wig ring japan

講師:女優・タレント   原 千晶さん

강사 : 여배우 . 탈랜트 하라 치아키 씨

体調不良を感じるも一人で悩む日々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혼자서 고민한 나날들

子宮がんを2回経験し、今年で治療後8年目を迎える女優の原千晶さん。1回目のがんは、31歳になろうとする頃。当時は今のように子宮頸がんや乳がんなど女性特有のがんに関して、検診を促すアナウンスは少なく、多くの女性が検診の必要性を感じていませんでした。原さんもその一人で、子宮頸がんに関しては症状が出にくいこと、さらにもともと生理痛はひどく痛さや辛さに慣れていたため、いつものことだろうとあまり深刻にとらえていませんでした。

자궁암을 2차례 경험하고, 올해로 치료 후 8년째를 맞이하는 여배우 하라 치아키 씨. 첫 번째 암은 31살이 되려할 즈음. 당시만 해도 오늘날처럼 자궁경부암이나 유방암 등 여성 특유의 암에 관하여 검진을 촉구하는 아나운서는 적었고, 많은 여성들이 검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라 씨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자궁경부암에 관해서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것과 더욱이 원래부터 생리통이 심하여 통증이나 괴로움에 익숙해져 있어서 늘 그러려니 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そのうち、不正出血が続いたり、血が混じったようなおりものが沢山でるようになり、身体の異変を感じながらも半年ぐらい一人で悩むことになります。今振り返るとこのときに自分の身体と相談するべきだったと悔やまれます。

그런 중에 예사롭지 않은 출혈이 계속되기도 하고 피가 섞인 것 같은 대하가 엄청 나오면서, 신체의 이변을 느끼면서도 반년 정도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때에 자신의 몸과 상담했어야 했다고 후회가 된다.

がん宣告より辛かったことは…

암 선고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2005年2月半ば、ついに日常的に体の不調が続き、近くのレディースクリニックに行くと1cmぐらいの腫瘍が見つかりました。先生に大きな病院へ行くようすすめられ、東京都内の大学病院を受診します。そして腫瘍を取り除く円錐切除手術を受け、病理検査部でくりぬいた腫瘍の検査結果を待ちました。3月に入るころ、病院から連絡があり母親と2人で外来に結果を聞きに行きました。すると先生より「原さん、円錐切除で取った腫瘍はがんでした。」と子宮頸がん組織型が扁平上皮がんのIA期と告げられます。結婚も出産も経験しておらず、これまで仕事を頑張ってきた分、女性としての幸せはこれからだという矢先の出来事でした。

2005년 2월 중순 마침내 컨디션 부조가 일상적으로 계속되어, 가까운 여성 전문의원에 가니 1cm 정도의 종양이 발견되었다. 의사로부터 큰 병원에 가도록 권고를 받고 토쿄 도내의 대학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종양을 제거하는 원추절제수술을 받고 병리검사부에서 도려낸 종양의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3월로 들어설 무렵,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어머니와 둘이서 외래로 결과를 들으러 갔다. 그랬더니 의사가 「하라 씨, 원추절제로 도려낸 종양은 암 이었습니다」라고 자궁경부암으로 조직형이 편평상피 암의 1A기라고 선고를 받았다. 결혼도 출산도 경험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일을 열심히 해온 만큼 여성으로서 행복은 지금부터라 하는 참에 일어난 일이었다.

先生からはこのまま子宮を残してしまうとそこに再発や、他の臓器に転移する可能性もあるため、子宮も卵巣も全摘出をすすめられました。「がんでした」と30歳の若さで言われたことはとても辛いことでしたが、それより「子宮を全部取る」と言われたことの方がショックでその場に泣き崩れてしまいました。

의사는 이대로 자궁을 남겨두면 그곳에 재발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자궁도 난소도 전부 적출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암입니다.」라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선고를 받은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그것보다 「자궁을 전부 잘라낸다」고 들은 것이 쇼크로 그 자리에 울며 쓰러져버렸습니다.

女性にとって子宮を取るということは人生にものすごく関わってくることです。悩んだ末、円錐切除手術でひとまずがんは取り除いたので子宮は温存するという選択をしました。その代わり、月に1回きちんと検査を受けて経過観察をすることを先生と約束しました。

여성에게 자궁을 도려낸다는 것이 인생에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원추절제 수술로 일단 암은 절제했으므로 자궁은 보존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그 대신 월 1회 제대로 검사를 받고 경과관찰을 하도록 의사와 약속을 하였습니다.

自身の甘さから引き起こしてしまった再発

자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생긴 재발

その後2年間は先生との約束どおり毎月病院に通っていました。そうすると毎回検査結果をクリアしていくうちに「大丈夫、大丈夫、再発も転移もしない、このまま逃げ切れる」と自分の都合のいいように思うようになっていき、毎月病院に行くのも大変だし、検査も痛いものではないけれど心地よいものではないし・・・・・・。気づいたら円錐切除手術を受けて3年目ぐらいからパッタリ病院に行くのをやめてしまいました。これが、自分にとって1番の過ちだったことにのちに気づかされます。

그 후 2년간은 의사와의 약속대로 매월 병원에 다녔다. 그렇게 하니 매회 검사결과를 좋게 받아가는 동안에 「괜찮아, 괜찮아 재발도 전이도 하지 않아, 이대로 피할 수 있어」라고 자신의 형편이 좋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매월 병원에 가는 것도 번거롭고, 검사도 아픈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상쾌한 것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원추절제수술을 받은 지 3년째 정도부터 병원에 가는 것을 뚝 끊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자신의 제일 큰 실수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35歳になった2009年の年末、体調が再び悪くなり、ついにはのた打ち回るほどの激しい腹痛に襲われました。自分の判断で通院をやめてしまったため、円錐切除手術を受けた大学病院には行きづらく、一番初めに行ったレディースクリニックへ行きました。先生から「前回とは全く状況が異なっています。これはきちんと大きな病院で検査を受けてください」と言われるも、大学病院へは行きづらいことを話し、他のがん専門の病院で診察を受けるとがんがみつかりました。

35살이 된 2009년 년 말, 몸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마침내 몸부림치며 뒹굴 만큼 격심한 복통이 덮쳐왔습니다. 자신의 판단으로 통원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원추절제수술을 받은 대학병원에는 가기 어려워서, 가장 처음에 갔던 부인과 전문 의원에 갔습니다. 의사로부터 「지난 번과는 전혀 상황이 달라졌다. 이것은 제대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 바란다.」고 말을 들었지만 대학병원에는 가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다른 암 전문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암이 발견되었다.

大学病院で先生の言うことを聞いて、1か月に1回の検査をきちんと受け、自分の身体を守っていれば、再びがんになってしまうことはあっても、進行する前にもっと早い段階で分かったはず。でもそれを怠ってしまったのは自分自身。その時は自分をのろうと同時にこれから先どうなるのだろうと恐怖でいっぱいでした。

대학병원에서 의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월 1회의 검사를 꼬박꼬박 받고, 자신의 몸을 지켜 갔다면 다시 암이 생겼어도 진행되기 전에 아주 빠른 단계에 알 수 있을 터. 그러나 그것을 게을리 한 것은 자기 자신. 그 때는 자신을 저주함과 동시에 지금부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 공포 그 자체였다.

後悔する日々

후회하는 나날들

紹介先の病院が、がん専門だったこともあり、再発したのだと覚悟は決めていました。ただ、それでも「手術で子宮を取れば大丈夫だろう」と希望を持っていました。しかし、先生より「その段階はとっくに超えているよ」と言われてしまったのです。「今回は子宮頸部の腺がんで、その腺がんが子宮の入り口に広がって浸潤している状態です。子宮は独立した臓器ではなく、近くに膀胱や直腸などたくさんの大切な臓器と骨盤に収まっているため、子宮からがんが転移した場合は手術ができない可能性も覚悟してください。手術は後方子宮全摘というもので子宮、卵巣、卵管、女性の生殖器を全て摘出して、骨盤の中のリンパ節も沢山取らなければいけない5~6時間もかかる大きな手術です。そして手術が終わり、体力が回復したところで抗がん剤を6クール。全て終わるのに半年間ぐらいはかかりますのでお仕事は休んでください。これが当病院の標準治療になります」と、先生に矢継ぎ早に説明され、見事に希望が打ち砕かれました。

소개를 받은 병원이 암 전문 병원이기도 했거니와 재발한 것이라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단지 「수술로 자궁을 들어내면 괜찮을 거야」라고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가 「그 단계는 이미 지났어요.」라는 말을 듣고 말았다. 「이번에는 자궁경부의 선암으로 그 선암이 자궁의 입구에 퍼져서 침윤되고 있는 상태이다. 자궁은 독립된 장기가 아니라 가까이에 방광과 직장 등 많은 중요한 장기와 골반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자궁에서 암이 전이된 경우에는 수술이 불가한 가능성도 각오하기 바란다. 수술은 후방자궁 전 적출이라는 것으로 자궁과 난소, 난관, 여성의 생식기를 전부 적출하고, 골반 속의 림프절도 많이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5~6시간이 걸리는 큰 수술이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고 체력이 회복될 즈음에 항암제를 6쿠르(Kur : 특정 치료를 계속하는 기간). 전부 다 끝내는데 6개월 정도 걸리므로 일을 쉬기 바란다. 이것이 당 병원의 표준 치료입니다.」라고 의사는 연달아 설명을 하여, 보기 좋게 저의 희망은 부서져 버렸습니다.

家に帰りインターネットで病気のことを調べると「リンパを取るとリンパ浮腫という後遺症が発症する可能性がある」「膀胱の近くの神経を触る可能性があるので排尿障害や排便障害が起こる可能性がある」など想像を絶する情報が飛び交っていました。これらを目にしたとき、「絶対に死にたくない! 命だけは助けてほしい」という思いと、なんでちゃんと通院をしなかったのだろうという後悔の気持ちでいっぱいでした。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병에 관한 것을 조사하니 「림프를 제거하면 부종이라는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방광 가까이의 신경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어 배뇨장애나 배변장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등의 상상을 절하는 정보가 난비하였다. 이것을 보니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아! 목숨만은 구하고 싶다」라는 생각과 왜 제대로 통원하지 않았는지 하는 후회로 가득했다.

カルテを取りに大学病院へ、そして治療へ

진료 카드를 가지러 대학병원으로, 그리고 치료에

そのままがん専門の病院で手術を受けようと思っていましたが、治療のため前回受けた円錐切除手術のカルテをもらいに、うしろめたい気持ちのなか、再び大学病院へ行きます。そのとき、先生が診察もしてくださり「原さん、もう一度ちゃんと頑張って治療しましょう、絶対大丈夫だから、今度は逃げずにがんばろう」と言ってくださり、元の大学病院にもどって手術をすることを決意しました。精密検査の結果、子宮体部の部位内膜腺がんステージ3Cであることが判明しました。

그대로 암 전문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치료를 위해 전 번에 받았던 원추절제수술의 진료카드를 받으러, 떳떳하지 못한 기분으로 재차 대학병원에 갔다. 그 때 의사가 진찰도 해 주시면서 「하라 상、다시 한 번 열심히 치료를 해 봅시다, 절대로 괜찮으니 이번에는 도망가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라고 말해 주셔서 원래의 대학병원에 되돌아가 수술을 받기로 결심하였다. 정밀검사 결과, 자궁내막 선암 3기로 판명되었다.

2010年1月13日に手術を受け、術後も抗がん剤治療を3週間ごとに6クール行ないました。始めに投与して2週間ぐらいから髪の毛が抜け始め、頭皮もぴりぴりしてきて回を重ねるごとに毛という毛は全て抜け落ちました。TC療法で一番顕著な副作用が脱毛です。

2010년 1월 13일에 수술을 받고 수술 후에도 항암제 치료를 3주마다 6쿠르(kur)를 시술하였다. 처음으로 투여하기 2주 정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여 두피도 따끔따끔해 지고 회를 거듭할수록 털이란 털은 모조리 빠지기 시작하였다. TC요법에서 가장 현저한 부작용이 탈모였다.

そして、今度は夜も眠れないくらい全身がビリビリ電気を流されたように痺れが始まり、それがだんだんと指先などの末端神経だけが痺れるようになってきました。抗がん剤治療が終わった半年後ぐらいまではずっと断続的に痺れは起こっていました。それからひどい便秘に悩まされます。抗がん剤治療は一番応えて、身も心もボロボロになってしまいます。クールを重ねるごとに出現する副作用に戸惑いながらも、吐き気止めの処置や、色々な体のケアをしていただきながら何とか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2010年5月末に全ての治療を終えました。

그리고 이번에는 밤에도 잘 수 없을 정도로 전신이 찌르르 하게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저림이 시작되고, 그것이 점점 손끝 등의 말단신경까지 저려오게 되었다. 항암제 치료가 끝난 반년 정도 후까지는 쭉 단속적으로 저림(증)이 생겼다. 그때부터 심한 변비로 고생하였다. 항암제 치료는 가장 타격을 주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쿠르를 거듭할수록 출현하는 부작용에 당혹해 하면서도 구역질 방지 처치나 다양한 케어를 받아가며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다. 2010년 5월 말에 모든 치료가 끝났다.

人とのつながりにより回復へ

사람과의 유대에 의해 회복으로

治療が終わり退院したとき、「どれだけスッキリした気分になるのだろう」ととても楽しみにしていました。ですが、実際に退院を迎えた日「これからどうやって生活して行ったらよいのだろう」という不安が募ります。ですが、その不安も一瞬のことで1日1日普通の生活に戻っていくなかで、半年ぐらいに髪の毛がポツポツ生えてきて1年半後にはウィッグがとれたりと、回復を感じるようになると「とにかくがんばって元に戻らなきゃ」という気持ちに変わっていきました。

치료가 끝나 퇴원했을 때, 「얼마나 시원한 기분이 들까?」라고 아주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퇴원을 앞둔 날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라는 불안이 심해졌다. 그렇지만 그런 불안도 한 순간에 하루하루의 생활로 되돌아가는 사이, 반년 정도 만에 머리털이 드문드문 나오고 1년 반 후에는 가발을 벗고, 회복을 느낄 수 있게 되자 「우선 열심히 원래대로 되돌아 가지 않으면..」이라는 기분으로 변해 갔다.

2011年7月には、同じような経験をした乳がんや子宮がん、卵巣がんなど女性特有のがんを経験した女性たちが集まって、決して一人で悩むことなく情報や想いを共有できたらどんなに楽かという経験から、「よつばの会」という婦人科のがんの患者会を立ち上げました。そして、早期発見早期治療の鉄則を促し、罹患して語りつくせないほど感じた命や検診の大切さを訴え続けています。

2011년 7월에는 같은 경험을 한 유방암이나 자궁암, 난소암 등 여성 특유의 암을 경험한 여성들이 모여서, 결코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정보나 생각을 공유하면 얼마나 즐거울까라는 경험에서 「네 잎 클로버 회」라는 부인과 암 환자 회를 세웠다. 그리고 조기발견 조기치료의 철칙을 촉구하고, 암에 걸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느낀 생명이나 검진의 중요성을 부르짖고 있다.

今、元気を取り戻せた一番の要因は人とのつながりでした。「よつばの会」をはじめてがん経験者の方々が病気により人生が変わり、それをどうやって受け入れて乗り越えていったのか。今どうやって生活しているのか、など経験者でないと理解できない想いを聞いてもらえる場所があることを、すごく意義深いことであると感じています。誰かの役に立っているとか、誰かのためという想いが自分を徐々に力づけていき、ここまで回復できました。これからも少しでも多くの婦人科系がん患者の救いになるように励んでいきたいです。

지금 건강을 되찾은 가장 큰 요인은 사람과의 유대였다. 「네 잎 클로버 회」를 비롯해 암 경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암에 의해 인생이 변하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극복해 가나? 지금 어떻게 해서 살아가나? 등 경험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들어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아주 의미 있게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 도움이 되고 있다거나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신을 서서히 힘을 얻게 하여, 여기까지 회복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도 조금이라도 많은 부인과 계통의 암 환자들을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第2部:トークセッション

제2부 : 토크 세션

原千晶さん、久留米大学先端癌治療センター 所長(ウィッグリング理事)山田亮先生、 ウィッグリング代表上田あい子によるトークセッション

하라 치아키 씨, 쿠루메대학 첨단치료센터 소장 야마타 아키라 박사

위그 링 대표 카미타 아이코 씨에 의한 토크 세션

Q:「人とのつながりが自分を前向きにしてくれた」とのことですが、他に前向きになれた出来事はありますか?

Q: 「사람과의 유대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주었다」라는 것이지만, 달리 전향적이 된 사건이 있습니까?

A:抗がん剤治療中が一番気持ちの浮き沈みが激しく大変な時期でした。当時、35歳という年齢で手術によって子宮をとってしまったので、そのことが一番つらくて・・・。自分が先生との約束を守らず引き起こしてしまったこととはいえ、子宮を失ってしまったダメージは強かったです。そんな時、病気をする前に学んでいたアロマセラピーの友人に「今、ぽっかり穴があいちゃって辛いかもしれないけれど、必ずそれを埋めてくれる出来事がこれからあなたの人生で起こるから楽しみだね」と言われました。

A: 항암제 치료 중 가장 기분의 부침이 심하여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당시 35살이라는 연령에 수술로 자궁을 절제하고 말았으므로, 그것이 가장 괴로웠고... 자신이 의사 선생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자궁을 잃고 말았다고는 하지만 자궁을 잃고 말았다는 타격은 엄청났습니다. 그럴 때, 병에 걸리기 전에 배우고 있던 아로마 요법의 친구가 「지금 구멍이 뻥 뚫려 괴로울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것을 메워줄 일이 지금부터 당신의 인생에 생길 것이므로 즐겁게 지내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その友人はご自身の判断でお子さんがおらず、長い間お母様の介護をされていました。母親にならなかったことに引け目を感じていたのですが、お母様の介護を通じて母親の役割をさせてもらっていると打ち明けてくれました。それを聞いたとき、目から鱗が何枚も剥がれ落ち、元気が出てきました。

그 친구는 자신의 판단으로 자식이 없고, 오랜 기간 어머니의 개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개호를 통하여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아 주었습니다. 그 애기를 들었을 때 눈에서 비늘이 몇 장인지 벗겨 떨어지고 힘이 쏟아났습니다.

失うことや辛いことはみんなそれぞれにあります。でもきっとそれを穴埋めするようなことが起こると思います。これが私をすごく前向きにしてくれたエピソードです。

잃어버리거나 괴로운 것은 누구나 각각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파묻을 일이 반드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를 매우 적극적으로 만들어준 에피소드입니다.

Q:がん以外の体調不良で他の病気にかかりましたか?

암 외의 상태부조로 다른 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까?

A:今のところがん以外の病気で病院にかかったことはありません。本当にまれなことなのですが、私は卵巣2つ残しています。35歳の当時はこのことにホッとしたのですが、今は転移や再発が心配でなりません。ですが、それが私の一つの運命だと思って受け止めています。

2017年春に遺伝子検査を受けると、リンチ症候群という診断が下りました。どうにもこうにもがんになりやすい体質だということを受け止めています。

지금까지 암 외의 병으로 병원에 간일이 없습니다. 정말 드문 일이지만 나는 난소를 2개 남겨두었습니다. 35살 당시에는 이 일에 안도했지만, 지금은 전이나 재발이 걱정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운명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がんをご自身の経験として公表することは勇気のいったことだと思いますがそのきっかけを教えてください。

암을 자신의 경험으로서 공표하는 것은 용기라 부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A:一番最初にかかった子宮頸がんの時は全く公表する気はありませんでした。人に知られたくなくて仕方なかったです。その後、私自身ががんと向き合うことができず、くしくももう一度がんになったとき、自分の考えや姿勢を改めるべきだと色々見えてきました。そして、2度目のがんを治療しながら隠し切れないだろうなと思っていました。そんなことよりも、自分が元気になることだけを考え、治療に専念しました。

제일 처음 자궁경부암에 걸렸을 때에는 공표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내 자신이 암과 바로 마주할 일 없이, 이상하게도 다시 한 번 더 암에 걸렸을 때 자신의 생각이나 자세를 다시 바꾸어야 한다고 여러 번 생각하였습니다. 두 번째 암을 치료하면서 감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것보다도 자신이 건강을 되찾는 것만을 생각하고, 치료에 전념하였습니다.

治療が終わった半年後に公表したのですが、やはり隠すことが難しくなったんです。ウィッグが外せるかはずせないかのとき、TBSの「ヒルオビ」に出演がきまり、最初のころはウィッグで出演していました。今の時代、みんなの目はいくつもあるので逃げられないんです。それならハッキリいおうと思ったし、自分ががんと向き合えなかったことから引き起こしたことなので、そのことを今後の人生で背負っていくために皆さんに事実をお伝えして、がんの啓発をしていこうという気持ちに切り替わりました。

치료가 끝나고 반년 후에 공표하였지만, 역시 감추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가발을 벗을 수 있을지 없을지 갈등할 때에 TBS의 「ヒルオビ」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이 결정되어 최초에는 가발로 출연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이 많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확실하게 말하자고 생각했고, 자신이 암과 마주할 수 없어서 불러온 일이므로 그것을 이후의 인생에서 지고 가기 위해 여러분들에게 사실을 전하여, 암의 계도를 해 가자는 기분으로 바뀌어버렸다.

参加者の感想

참가자의 감상

・がんは2人に1人なると言われているけど、どこか他人事でしたが身近な人が去年、乳がんになり手術しました。これから検診は必要だと思いました。

암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걸린다고 말하지만, 먼 다른 사람의 일로 치부했지만 가까운 사람이 작년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검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辛い経験を乗り越えられ、現在また元気にTVや講演会で活躍されているお姿に元気付けられました。私も6年前に甲状腺がんや乳がんを患い、今は定期検診に半年や1年に1回行っており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힘든 경험을 넘어서서 현재 다시 건강하게 TV나 강연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습에 힘을 얻었습니다. 저도 6년 전에 갑상선암이나 유방암을 앓아, 지금은 정기 검진으로 반년이나 1년에 한 번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原さんのお話分かりやすかったです。原さんのように大病をされてもイキイキと活躍されて素晴らしいと思いました。原さんをお手本に私も生きていけたらと思いました。

하라 상의 이야기 알아듣기 쉬웠습니다. 하라 상처럼 큰 병에 걸렸어도 힘차게 활약하니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라 상을 모델로 삼아 저도 그렇데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自分の経験と重なるところがあり、涙がでそうになりました。

자신의 경험과 겹치는 곳이 있어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このような講演があると、がんの経験がある方に、今までよりも相手の立場を考えた行動がとれます。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이와 같은 강연이 있으면, 암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지금까지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암스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