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3기
남성, 33세
수술, 항암, 생활관리

내가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 나이로 서른 세 살 때였다. 진단 결과 암이 발병한 지 6∼7년 됐다고 하니 스물 일곱, 또는 스물 여덟 살 때 암에 처음 걸린 셈이다. 백혈병 등 어린아이들에게 많이 발병하는 소아암도 있긴 하지만 위암의 경우 스물 여덟 살 때 걸렸다면 매우 빠른(?) 것이다.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다.

 

왜 암에 걸리게 됐는지에 앞서 위암의 증상에 대해 알아보자. 순전히 나의 경우다.

우선 위통. 평소 위장이 약해 속 쓰림이 심했는데 특히 위암 진단 얼마 전부터 통증이 더 심했다. 위장이 늘 부어있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된통 체한 경험이 있다. 그 이후로 위장이 약해지지 않았나 싶다. 대학 다닐 때 속이 자주, 아니 항상 쓰렸다. 그러나 이 때까진 위암이 아니었다. 위통, 또는 속 쓰림은 결혼하고도 수술 받기 전까지 항상 계속됐으며 늘 위장약을 입에 달고 다녔다.

다음으로 구역질. 위암 진단을 받기 약 6개월 전쯤부터 구역질이 점차 심해졌다. 특히 이빨을 닦을 때 구역질 증상이 뚜렷했다. 또 술 마시고 구토하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구토를 하게 됐다.

세 번째로는 체질변화를 들어야겠다. 암 진단을 받기 3∼4년 전부터 시계를 찰 수 없었다. 피부 알러지가 생긴 것이다. 안경도 금속제 안경테를 쓸 수 없어 뿔 테로 바꿔야 했다. 아마 위암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긴 현상이 아닌가 싶다. 이 밖에 극심한 피로감도 위암의 증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크게 피곤할 일도 없는데 늘 피곤했다. 특히 위암 진단 몇 달 전부터는 피로감이 심했다. 빈혈증상도 있었다. 피부가 거칠어지고 특히 검게 변해갔다.

그러나 암환자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체중감소는 없었다. 나의 경우 오히려 체중은 지속적으로 늘었다. 위암 수술 받기 6∼7년 전 몸무게는 55kg 안팎이었으며 매우 마른 몸매였으나 수술 받기 직전 몸무게는 67kg 안팎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왜 내가 위암에 걸리게 됐는지에 대해 짚어보자. 역시 순전히 내 생각이다.

우선 약물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얘기한 대로 평소 위장병(주로 속쓰림)을 앓고 있던 나는 늘 위장약을 먹어댔다. 고등학교 때부터 제산제(주로 노루모)를 무시로(!) 먹었고 겔포스 등 짜먹는 약부터 속청 등 마시는 약, 잔탁 등 간편하게 하루 한 번만 먹어도 되는 약까지 다양한 종류의 소화제를 엄청 먹었다. (약값도 엄청 들었겠지)

거기다 매년 봄 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편두통을 일주일 내지 열흘씩 앓았는데 이 때는 펜잘, 게보린 등 두통약을 엄청 먹었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고 빈속에 두통약만 한 주먹씩(한 두 알로는 진통이 안돼서) 먹기도 했다. 편두통을 앓아본 사람은 알지만 한 번 통증이 시작되면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흐르는 것은 물론이고 고통을 참기 위해 멀쩡한 손톱으로 콘크리트 벽을 벅벅 긁어댈 정도로 통증이 심하다. 어쨌든 그 많은 약들은 위벽을 상하게 했을 것이고 일부에 침착된 약 성분이 암을 일으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다음으로 음식물 및 식습관. 짜고 맵고 자극적인 것을 엄청 좋아했다. 매운 고추장에 더 매운 고추를 찍어 먹는 그 자극적인 맛에 황홀해 했다. 그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다며 후루룩 마시곤 했다. 무엇보다 불규칙한 식습관이 더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 자취시절. 아침은 굶고 등교하고 점심은 라면으로 때우고 저녁땐 술만 진탕 마시는 나날이 계속됐다. 결혼해서도 밤 12시쯤 출출하다며 라면 끓여먹기 일쑤였고 식사시간은 빨리 먹기 경쟁이라도 하듯 후다닥 제대로 씹지도 않고 먹어 치우는 형이었다. 그리곤 늘 소화불량, 속 쓰림 등으로 한 손을 명치께 얹고 다녀야 했다.

술도 엄청 마셔댔다. 술내기해서 진 적이 없으며 술 잘 마시는 걸 자랑으로 알고 다녔다. 일주일에 평균 닷새는 술을 마셨고 대개 12시 넘어 까지 이어졌다. 12시 이후 술집 영업금지가 있던 시절에는 단골로 가던 '비밀술집'까지 있었다. 무식하게 24시간 내내 술만 마시며 지낸 적도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위장을 망치려고 작정한 놈 같지 않은가. 거기다 잘 피지 않던 담배도 술만 마시면 줄담배로 이어졌다.

천성적으로 운동을 싫어했다. 오죽하면 대학입시 때 체력장 16점(20점 만점)을 맞았을까. 시험에 참가만 하면 주는 최저점수가 16점이었다. 스포츠는 구경하는 것도 별로 였다. (농구만 빼고)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도 발암과 관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다가도 조그만 소리에 깨어날 정도로 예민하고 싫은 소리라도 듣거나 하면 잠을 못 이뤘다. 보통사람이라면 대범하게 지나칠 사소한 문제에도 집착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었다. 이런 성격적 요인도 무시 못할 것이다. 암 병동에 있을 때 환자들을 만나 자주 암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암환자들을 보면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게 받으며 살게 되는데 특히 위암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환경적 요인도 꼽히는데 대학시절 자취하던 집의 수돗물은 정말 최악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큰 대접에 물을 받아 놓으면 빨간 녹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런데도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온 날은 새벽에 일어나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셔댔다.

이상은 내가 스스로 되짚어본 과거의 생활을 기준으로 암과 관련됐을 법한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지 꼭 이런 생활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는 볼 수 없다. 나의 이런 생활과 단 한가지도 동일하지 않았던 사람도 위암에 걸린 경우가 많다. 암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다. 치료법이 제대로 개발돼 정복되지 않은 질병인 것도 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개 암환자들은 내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 같은 천형이 내려졌나 하며 비관하게 된다. 그러나 무슨 엄청난 잘못을 해서 암에 걸린 것은 아니다. 비관의 감정은 무조건 없애라. 살아야겠다는 의지,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억지로라도) 일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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